별을 ㄷ다는 소년들
한국대학산악연맹 '엑셀시오'에 기고한 詩입니다.
별을 따는 소년들
김기섭
자작나무 숲으로 돌아가야지.
능소화 무더기로 핀 이승의 골목길을 돌아
국경 없는 저녁노을
저물어 가는 *서강西江 둔치에 앉아 까마득히 흘러간 강물의
생生의 저편
유언비어처럼 번지던 적막과 혼돈이 빚어낸 별들을 헤아리려면
푸른 별의 한 모퉁이에 정박해 둔
눈썹달에 돛을 달고
그대가 남겨준 주소록의 간이역을 지나
여름날 불현듯 펄럭이는 소나기, 풍경風景 깊은 토왕성으로 들어가야지.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몰라.
문 밖 서성이는 여자
창 밖 부러진 떡갈나무에 앉아 풀잎처럼 해금을 켜고 있는데
활이 현絃을 지날 적마다
가늘고 긴 전생前生의 침묵으로부터 묻어나오는 숲의 노래
내밀한 나뭇잎들의 속삭임, 허공을 가르며
아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다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난 물의 속살,
물의 변증법적 서사시敍事詩
바람이 깎아 놓은 장엄한 벽에서
폭포는 녹슨 세월을 문지르며 홀로 선 외로움에
아무도 범접 못할 노래를 부르지.
살아, 늘 푸른 나무가 되고 싶었지만
세상에 미처 하지 못한 목소리는 골골이 울려 퍼져
지상의 아픈 것들과 더불어 어느 한날 고요가 되고 별이 되는데
나의 몽상적인 공화국에도 행간 속에 숨겨둔 밤이 오고 있었지. 아무도 지배할 수 없는 그 땅에는 솜다리들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신갈나무 여린 잎 속에 숨어 있던 산양들이 벼랑 끝에 앉아 깊게 패인 산 주름을 관조했지. 그 사이 암각화 그림문자에서 깨어난 소년들이 혹등고래를 타고 검은 파도를 넘어 토왕골을 산보하던 동안 별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소년들은 선녀봉에 걸터앉아 긴 궤적을 그리며 사라지는 유성우를 황홀히 바라보다가 거문고자리를 잠시 빌려 생성과 소멸에 대하여 연주했지. 기쁨과 슬픔이 눈보라처럼 번지는 밤. 아침이면 가뭇없이 스러질 노래는 북방한계선을 넘어 개마고원을 지나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에 닿았지만, 사랑이 말라버린 벌판엔 스산한 바람소리만 가득 찼지.
누군가의 생애가 저물어 배롱나무 꽃잎 떨어지는 소리, 화엄경을 읽다가 늙어버린 안락암의 풍경 소리. 소년들은 첫새벽이 오기 전 거문고를 올려놓고 열목어가 툼벙거리는 은하수 여울목에서 맑디맑은 별 몇 개를 땄지. 그 중 불멸이라 불리는 별을 토왕폭 머리에 걸어놓고 소녀에게 화관花冠을 만들어줄 별을 주머니에 넣은 채 봉인된 그림 속으로 서둘러 사라졌지.
*‘별을 따는 소년들’은 설악산 토왕골 선녀봉 우측에 있는 리지이다. 경원대학교OB산악회가 1997년 개척했다.
*서강 - 강원도 영월 서쪽에 있는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