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피민주주주의공화국 통령 이상곤
인제군 ‘설피민주주의공화국’의 통령 이상곤
김기섭
전화가 왔다. “김 기자, 뭐해? 여기 진동리야. 지금 눈이 죽여주게 내려!" 전화기로 밀려드는 그의 컬컬한 목소리에선 금방이라도 눈이 곧 떨어질 것만 같다. 이상곤, 내가 그를 만난 건 98년 9월 백두대간 점봉산 단목령 구간을 종주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만난 우리는 그의 집 앞에 가스등을 훤히 밝혀놓고, 그가 손수 담근 때깔 고은 마가목주와 가을 밤 풀벌레 소리를 안주삼아 청춘을 노래했고, 설피밭을 휩쓸고 지나가는 은하수의 눈물 조각들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커다란 통유리창 밖엔 청명한 햇살 속으로 점봉산이 성큼 걸어왔다. 눈이 부셨다.
그가 거처하는 곳은 인제군 북면 진동리 설피밭. 내린천 물결의 시원이 되는 그곳은 10여 년 전만 해도 교통이 불편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본래 그는 도봉산 언저리의 산꾼이었다. 한때 방랑벽에 빠져 전국을 떠돌던 그는 설피밭이 문득 마음에 들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그는 그 옛날 박달나무가 많았다는 단목령 바로 아래, 하늘과 맞닿은 곳에 자신의 아지트를 건설했다. 그리고 ‘설피민주주의공화국’을 선포하고 홀로 ‘통령(統領)’이 되었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그곳에 갔다가 무려 6일간 폭우에 갇혀 있었다. 그때 함께 고립된 사람들과 통령을 모시고, 내가 요리를 잘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어 그의 식량을 거덜 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내렸던 비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의 집에는 전기가 없으니 지출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의 수입은 효소와 마가목주 등을 만들어 파는 것과 지인들이 머물고 가면서 주는 몇 푼의 돈과 가끔 동네일을 거들어주고 받는 돈이 모두다. 그래도 그는 현대 자본주의를 꿋꿋하게 살다 갈 것이다.
그 집에서 문명의 이기란 세상을 이어주는 전화 한 대가 고작이다. 밤이 되면 그의 집은 촛불 천지다. 그의 시간은 우리들과 달리 더디 간다. 그의 할 일은 작은 채마밭을 일구고, 책을 읽고, 외로우면 술을 마신다. 또한 그는 더럽게 게으르다. 하긴 한 공화국의 통령이니 누가 뭐랄 사람도 없다.
이 겨울, 그가 보고 싶다. 열목어가 뛰노는 진동계곡을 지나, 미친바람이 부는 쇠나드리의 너른 억새밭을 지나 그에게 가고 싶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그의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뒤를 보며, 작은 유리창 밖으로 떨어지는 눈발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