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흰나비의 추억
몽유도원도 사진- 월간 [마운틴]
배추흰나비의 추억
김기섭
만월암滿月庵이 있다. 도봉산
큼지막한 *바위굴에 보름달이 차올라
그곳 치마바위에 앉아 아랫녘을 바라보면
여름이 술렁거리는 숲속엔
달빛 젖은 소쩍새
귀 밑까지 파고드는 적막감을 못 이겨
어둠의 한 모서리를 에돌아 환하고 환한 달빛과 속닥거린다.
이윽고 고개 낮춘 불암산이 목탁을 두드리는 시간
풍경風景은 비로소 옷을 벗고 고요에 잠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걸린 달이, 풍경風磬이 흔들린다.
종소리 깊고 아득한 심연을 열어
몇 겁 세월 동안 해와 별 그림자가 자운봉을 스쳐 간 뒤
전생으로 이어진 협궤 열차가 긴 궤적을 그리며 지나갈 동안
말라르메가 시를 낭송하고 샤갈은 그림을 그린다.
졸음에 겹던 사내가 붓을 놓고 한눈파는 사이
지난 봄 욱신거리며 우화羽化를 마친 배추흰나비들이
선인봉과 만장봉에서 몽환적으로 피어난다.
추억한다.
배추흰나비들은 저 세상에 두고 왔던 잎사귀에 고인 물소리와
햇살 깃든 야생화 꽃 이름올
올 여름엔 더욱 아플 거 같다고
야윈 날개에 묻은 달빛, 이슬 털어내며
한 동안 미래를 차압당한 자들의 표정을 읽고 다니다가
차마 지울 수 없는 연민의 모퉁이에서 눈물 몇 방울 훔치고는
조금은 아름답고도 슬픈 지상의 음계를 날아
도봉산으로 접어들어
그리움이 각질처럼 벗겨진 자운봉 자락에 앉아
온몸 가득 붉은 노을 문지르며 소멸을 관조하는 동안
꽃은 아무 데서나 피고 저물었다.
*도봉산 자운봉 리지'배추흰나비의 추억’가는 길목에 있는 만월암은 커다란 바위 천장을 이용해 만든 암자로, 이곳 치마바위에서 불암산으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조망하는 맛이 일품이다.